지난 3월 1일은 삼일절 99주년이었는데요.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날이기도 해서 대전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중 중구 무수동 유회당 일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를 했어요. 왜냐하면 무수동 마을 정월대보름 행사 중 첫 시작으로, 대전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무수동 산신제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무수동산신제는 1851년경에 작성된 동계첩을 통해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전국적으로도 희귀한 마을신앙의 역사성, 지역성, 전통성을 입증하는 학술자료의 가치가 크답니다. 그래서 2011년 10월 28일 대전광역시의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습니다. 

무수동계첩에는 무수동산신제의 역사와 축문, 진설도, 제기일, 산신강하일, 금기일, 계원명부, 동계재산, 제관명단 (1851~1926)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산신제는 원래 섣달 그믐날 방중부터 다음날 축시까지 제를 올렸는데요. 마을 뒷편 운람산 중턱에 단칸 기와집의 산제당이 있었고, 내부에는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었다고 해요. 1970년대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허물어졌고, 지금은 당집이 있던 자리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을 맞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행사로 제의절차는 동계첩에 기록된 바와 같이 남성제관들로 구성된 유교적 의례로 진행되며, 향올림→잔올림→재배→축문낭독(권충전, 1851년)→재배→소지올림(대동소지, 호구소지, 우마소지)→유황제→거릿제의 순이라고 합니다. 


 

무수동은 조선시대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이 1707년(숙종 33)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마을로들어오면서 안동 권씨 집성촌이 됐다고 합니다. 우암 송시열의 사위이자 자신의 부친인 권유(權惟)가 세상을 뜨자 무수동에 장례를 치른 후, 마을 뒷산에 손수 제당의 위치를 정하고 해마다 산신제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무수동산신제는 6·25전쟁 이후 동계가 파산하고 급속한 산업화의 여파로 유명무실해졌다가, 2008년 제49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출전을 계기로 무수동산신제보존회가 결성됐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대전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면서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날은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오고, 사진작가들도 찾아와 산신제 과정을 담기 바빴습니다.

 

무수동산신제는 조선 후기 남인계 반촌에서 전승되던 동제의 모습을 알 수 있고, 산신제와 거리제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안동 권씨와 그 예하 하민들의 역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더욱 역사적이고 소중한 전통문화입니다.

#무수동산신제 사진은 (재)대전문화재단 최창희팀장님께 받은 것을 사용했습니다.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2018 대전광역시 소셜미디어기자 조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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