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전에 대한 희망을 갖게하는 2018년 7월. 1952년 대전에서 촬영된 특별한 사진과 함께하는 전시회가 개막했습니다.

기록 사진은 항상 중요한데요. 특히 과거의 필름 사진은 지금처럼 변조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담고있는 사진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시절을 이해하기 좋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대전 원도심인데요. 66년 전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의 사진을 보니, 그 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면 사진속 풍경이 대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전시로 요청이 왔다고 하지요. 어느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인지 검증해달라고요.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개막공연과 개막식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개막공연, 아코디언 연주 서은덕


 

사진展<1952년, 그 여름의 대전> 개막식이 18일 오후 3시에 대전시청 2층 로비에서 열렸는데요. 이번 전시는 오는 8월15일까지 한달 간 계속됩니다. 

이날 개막식 축하공연에서 복합문화공간 '구석으로부터'의 서은덕 대표가 아코디언 연주로 '비목', '대전블루스'를 연주했습니다. 비목은 전쟁 희생자를 급히 묻고 나무비석 하나 달랑 세울 수밖에 없었던 슬픈 전쟁의 시절을 담았고, 대전블루스 또한 1956년에 발표된 곡이니 그 시절을 이해하기에 딱 알맞는 선곡이었습니다.  



대전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 정해교 국장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개막. 2018.7.18~8.15


 

정해교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 국장의 개막 인사말에 이어 드디어 전시를 가리고 있던 흰 장막이 활짝 열렸습니다.

 

[1952년, 그 여름의 대전] 사진전

2018.7.18~8.15

대전광역시청 2층 로비 전시장




 

100년도 안 된 역사인데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남아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 시기니 모두 정신이 없었겠지만, 그 때도 기록 담당관은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맡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요. 이렇게 외국인이 촬영한 자료가 나와야 알 수 있으니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사진은 모두 6.25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미국인 토마스 휴튼 상사가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멀리 서있는 등신상 크기의 주인공이 사진을 남긴 휴튼 상사입니다.

휴튼 상사의 외손주인 뉴튼 대령이 지난 6월에 대한민국 육군에 사진을 기증했는데요. 뉴튼 대령은 현재 미8군 1지역대 사령관이라고 합니다. 

뉴튼 대령은 외할아버지 유품에서 이 사진들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뉴튼 대령의 근무지인 미8군도 한국이라서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뉴튼 대령이 기증한 239장의 사진 중 많은 분량이 대전 지역에서 촬영한 것이라서 육군정보기록단은 대전광역시에 협조 요청을 했고, 원본 파일을 받아 철저한 고증절차를 거쳐 대전광역시 문화재 종무과와 대전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전쟁과 도시, 대전 in 1952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중 50여 장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사진으로, 한국 전쟁 당시의 대전을 담은 최초의 칼라 사진이어서 더욱 특별하다고 합니다.

1950년 6월25일에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이승만 정부는 몰래 서울을 빠져나와 6월27일에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부터 7월1일 대전을 떠나기 전까지 나흘동안 대전은 대한민국 임시수도였습니다. 7월20일엔 대전이 북한군에 함락됐다고 하는데, 위키백과에 떠르면 대전이 임시수도였던 것을 7월16일까지 본다고 합니다. 그럼 이승만이 7월1일에 대전을 떠났는데 정부는 16일까지는 남아있었다고 봐야하는지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생각납니다.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각성할 일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나라의 지휘체계가 얼마나 황망했을지 불 보듯 뻔합니다.  

 

토마스 휴튼 상사와 미8군 91중차량 정비 중대





이 전시의 사진이 촬영된 1952년, 휴튼 상사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미군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롭게 보입니다. '이곳부터 금연'이란 표지판 앞에서 시가를 물고 있는 여유와 유머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1952년 7월의 전쟁 상황이 어떻길래 표정에 여유가 보이는지 궁금해서 책을 찾아 보았습니다. '6.25 전쟁 1129일'이란 책인데, 수년 전 부산의 한 박물관에 갔을 때 비매품으로 받아온 책입니다. 여행 중인데 책이 두껍고 무거워서 놓고 올까 고민하다가 받아왔는데, 이렇게 유용할 줄 몰랐습니다.




1952년 7월에는 이때부터 이미 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선은 38도선을 두고 오르내리며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 , 중공군과 치열하게 접전했으니, 대전은 후방이라 한결 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강과 임진강에 철도교랑도 복구가 완료됐다고 합니다. 


영렬탑



지금은 이전했는데, 중구 선화동 언덕에 있던 영렬탑이 이 때도 우뚝 서있는 것이 보입니다. 설립 시기에 말이 분분했던 영렬탑은 이사진을 근거로 일제 강점기 설립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어딘지 아시겠어요?

원래 있던 자리는 선화동 언덕이었는데 2016년에 양지근린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영렬탑은 그보다 거의 10년 전인 2007년에 보문산의 보훈공원으로 옮겼습니다. 대전지방보훈청에 따르면 이 영렬탑은 1942년 일본신사로 건립됐다가, 6.25 전쟁이 휴전되고 몇년 후인 1957년에 보수해 전몰 장병 1712명의 위패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대전시가와 사람들 



 

이 다리는 목척교라고 설명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해 여름도 뜨거웠는지 길을 지나는 아저씨도 노점상 아저씨도 모두 밀짚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국방색 바지와 가죽으로 보이는 신을 신은 노점상은 수염도 멋지게(?) 기르고 멋스러운데요. 그 옆으로 대통령 선거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기호는 같은 2번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 부통령은 함태영 선생으로'라고 적혀있네요. 

전쟁 중에도 민주주의의 기본은 했지만 1952년 여름에 국민직접선거로 개헌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선거를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한달 만에 선거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권당이었으니 기호가 1번인데, 왜 2번으로 써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1952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선수도 파견해 역도에서 동메달도 하나 받았습니다. 1952년 그해 여름은 진짜 뜨거웠죠!




 

사진 오른쪽 하천이 대전천이라고 합니다. 하천부지가 이렇게 넓게 펼쳐졌다니! 그 위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판자집이 보이고 지류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물도 맑고 대전천의 수량도 넉넉하게 보입니다. 

북한에서 피난내려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 때도 곳곳에 냉면집이 많았다는 것을 이 사진이 증명합니다. 불에 그을린 폐허 건물 1층에 대충 가게를 열어 냉면을 팔았군요. 무슨 돈으로 사먹을 수 있었을까요? 왼쪽 아래로는 '이시영, 조병옥'이라고 써있는 선거 알림도 보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민주국민당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였네요.

 



 

지붕은 날아가고 벽체만 남은 저 건물은 교회 건물인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지붕은 날아갔지만 상당히 튼튼해보이는데, 만일 그대로 보존했다면 마카오의 상징인 성바오로성당(앞면만 남아있음)처럼 시대를 기억하게 할 수도 있었을까요? 


수운교와 아이들과 변두리 풍경들



 

이번 사진전에서 대전 수운교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주의 예언에 따라 광복을 전후해 수운교도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그 일부가 지금의 유성구 금병산 기슭에 자신들의 신앙촌을 건설했습니다. 수운교 본부는 북한 인민군의 여단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다니 인연이 상당하군요. 수운교 광덕문, 육모정이 그때도 있었다니 의미를 새기며 다시 가봐야 하겠습니다.

부산의 유명한 감천마을도 한국의 증산교 계통인 태극도 신도들이 1950년에 피난와서 생긴 마을이라고 하지요. 




 

교통을 정리할 만큼 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정표에는 신탄진은 SINTAN으로, 회덕을 HADOG이라고 써놨는데, 회덕까지 8.6 ㎞ 거리라고 표시했네요. 용남여객이 운영하는 영등포행 뻐-쓰 푯말도 보이고 대전X광선과 의원 나무간판도 보이는걸 보니, 1952년 7월의 대전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많이 회복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세 전후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지금의 70대 어르신 들입니다. 먼 과거 같은데 그리 멀지도 않군요.

사진 속 대전 도심에서 보이는 둘레산들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훨씬 높고 날카롭게 보이는 것이 새롭습니다. 어떤 산인지 궁금한데 안여종(대전문화유산 울림) 대표에게 문의해봐야 하겠습니다.

육군이 사진을 기증받고 내부에서만 전시를 한 번 연 이후에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 대전 전시가 처음입니다. 사진은 이 전시를 마친 후 대전시립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의: 대전광역시 문화재종무과 042-270-4512 /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실 042-270-8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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