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삼팔선 전면에서 북한군이 탱크로 밀고 내려와 6·25전쟁이 발발했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던 무능했던 정부는 그대로 남쪽으로 밀리면서 서울 시민을 그대로 둔채 6월27일 새벽에 몰래 대전으로 피난왔다고 합니다. 대전의 옛 충남도청은 잠시 임시 정부청사가 되기도 했고, 옛 충남도지사 공관은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이 거처로 사용하며 마치 서울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라디오로 대국민 허위방송을 했던 곳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7월1일에 대전을 떠나 이리, 목포를 거쳐 해군함정으로 부산으로 들어간 것이 7월3일이었다고 하니, 대전이 임시수도였던 시간은 단 나흘이고, 정부가 아무런 일도 못하는 거의 무정부상태였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기가 막힙니다.  



검은 비를 세운 산내 골령골 1차 학살자 유해 발굴 현장 . 왼쪽으로 보이는 긴 둔덕이 유해를 발굴한 곳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


검은 비에 새겨진 1차 집단 학살지



이야기는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 꺼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전쟁은 이미 68년 전, 전세계적으로 이념이 충돌하던 혼란한 시기에,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양대 이념 세력을 대변하는 전쟁이 한반도 땅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생존해 있으니 끔찍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랜 반목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화해하고, 더 아름다운 상생을 위해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이때, 우리에게는 가슴아팠던 시절을 기억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며 풀어가야 하는 일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학살현장 사진(1999년 기밀 해제)




올해 70주년인 제주 4.3이 그렇고, 남한 곳곳에 자국민에게 학살당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여러 곳이 있습니다.  대전에도 그런 곳이 있는데요, 너무 끔찍해서 한동안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쉬쉬했던 골령골 학살 사건 현장입니다.




산내 골령골 1, 2, 3차 학살 현장



사회주의 세력이 소련을 등에 업고 무력으로 남침하자 대전형무소에서는 재소자 1400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4㎞ 떨어진 산에 매장했다고 하는데요. 직접 산내 낭월동으로 끌고가 현장에서 처형했다고도 합니다. 


그 중에는 좌익 인사 등 국내 정치범도 있지만 제주 4.3으로 끌려온 제주도민들도 있었고, 공산주의 단체에 가입한 일반 재소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인 보도연맹원 같은 예비 검속자도 '예방 학살'에서 학살당했습니다. 

 

7월1일에 해산 명령에 따라 형무관들이 피난을 갔다는 증언으로 보아, 1차 학살은 보도연맹원을 위주로 6월28일부터 시작해 30일까지 학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대전광역시/자료 출처-대전광역시 인권센터 기사



7월 초, 2차 학살에는 정치범, 제주 4.3 관련자, 여순사건 등과 관련해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를 끌고가 학살했는데요. 미군이 운전하는 미군트럭에 재소자들을 싣고 갔고, 미군의 감시 하에 미군이 학살 장면을 촬영해 본국으로 보고했다고 합니다. 



영국 '데일리 워커'의 기자 앨런 위닝턴이 쓴 팜플렛 형태의 작은 책, [나는 진실을 보았다]에서 '랑월 데쓰 밸리'라고 기록했다.




곧 이어 7월 6일부터 3차 학살이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지옥같은 상황이었을지 그 끔찍함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당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1951년에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을 그렸을까요.



한국에서의 학살(1951)-피카소 (출처-대전광역시 인권센터 기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1차에 1400명, 2차에 1800명, 3차에 1700명 등 모두 49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당시 미군 보고서에는 7월 첫주 3일동안 1800명을 처형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인 기자의 기사나 여러 연구 자료에 의하면 최대 7000명의 민간인이 전쟁 시기에 희생된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런 학살은 반대로 북한이 점령하면서 우익 세력에도 똑같이 가해졌고, 북한이 북쪽으로 후퇴한 후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힘없는 민간인이 다시 국가 권력에 의해 부역자란 이름으로 희생되었습니다. 




사진 출처-임재근/자료 출처-출처-대전광역시 인권센터 기사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젠 진실을 담담하게 직면하며 서로 화해와 위로를 해야하는 시점입니다. 


끔찍했던 역사라 다시 생각하기 싫다고 외면하기에는 너무도 상처가 깊고 크고 아립니다. 진실을 알고 화해하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과정을 거쳐야 깊었던 상처에 새 살이 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산내 골령골 1차 학살 현장은 2007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고, 광범위하게 산에 파묻힌 2차, 3차 희생자 수천 구 유해의 위치를 찾는 것도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임재근/자료 출처-출처-대전광역시 인권센터 기사




꾸준히 진실을 알고자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산내 골령골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올해 벌써 19차라고 합니다.

올해도 학살이 시작된 6월27일 오전에 산내 골령골 추모공원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낸다고 하니, 과거를 기억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려는 시민들이 많이 참여해 희생자를 위로하면 좋겠습니다. 






6월25일 당일 저녁에는 대전광역시 인권센터에서 마련한 특강이 있습니다.

 

"대전 전쟁, 인권의 상흔에서 통일의 길을 묻다"


'이게 생시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격스러웠던 1차 남북정상회담과 깜짝 방문한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 분위기가 열리는 때에 통일에 대한 강연이라고 합니다. 많이 참가해 통일을 생각하는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강연 시간 2018.6.25(월) 오후 7~9시

강연 장소 대전광역시 NGO지원센터 모여서 50 (중구 선화동 삼성생명빌딩 2층)

참가 신청 대전광역시 인권센터 이혜선 042-36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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