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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행/공원ㆍ마을

우암사적공원 겨울 풍경, 우암 송시열의 흔적따라 거닐다

 

우암 송시열하면 보통은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을 많이 생각하고 있는 데요. 그곳 말고도 대전에는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암사적공원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이곳은 동아 마이스터교를 살짝 지나가면 나오는곳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을 기리는 곳입니다. 

 




우암사적공원은 당대의 대학자였던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함께 눈 내린 우암사적공원을 거닐어보실까요.




 

사람의 중요함은 사회가 정하는 것은 아닌데요.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거나 모두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가치가 있죠. 





해가 저무는 날 찾아가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의 석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석양이 아름다운 이유는 제 마음의 변화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따뜻함을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눈이 내린 이곳은 오래된 건물과 수북하게 쌓인 흰 눈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네요. 





어디서 흘러내려오는 물인지 모르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그 물이 고이는 곳이 있죠. 물길이 이어지는 곳은 이렇게 시냇물처럼 흘러내려옵니다. 

 



 

우암사적공원 안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온 기국정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매년 인문학 강연이 열립니다. 이곳이 개방되었을 때 다시 한번 들려야 할 것 같아요.



 

우암 송시열의 흔적을 따라가보니 최근에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하고도 연관이 있더군요. 우암은 효종의 즉위와 더불어 정계에 진출했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효종이 항복하자 낙항하여 초야에 묻혀 살았다고 합니다.

 



 

우암은 조선시대에 그 유명한 장희빈의 아들의 세자 책봉이 결정되자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결국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후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지킨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우암은 이기론(理氣論)에서 이황의 이원론적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배격하고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했는데요. 사단칠정(四端七情)이 모두 이(理)라 하는 일원론적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정통 성리학자로서 주자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습니다.


 


우암사적공원의 정자와 연못, 겨울은 서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암 송시열은 생전에 내수사(內需司) 혁파, 궁방전(宮房田) 억제, 군영(軍營) 감축, 호적법·호패법·향약·사창법·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대동법·호포법 등 재정비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암이 제기한 구체적 방책들은 농민의 각종 세 부담을 줄이는 대신, 세를 부담하는 양민층을 확대하고 국가의 재용(財用)을 절감함으로써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우암사적공원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복원됐는데요. 주요시설로는 남간사, 이직당, 심결재, 견뢰재, 명숙각, 인함각, 내삼문, 외삼문, 유물전시관, 장판각, 남간정사 등이 있고요. 우암의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중요 문화재가 보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