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세상 좋아졌지요. 집집마다 샤워기나 욕조 정도는 다 갖췄으니까요. 그러나 제 어린 시절만 해도, 온 몸을 씻는다는 것은 동네 목욕탕에 가야할 일이었습니다. 부모님 손 잡고 따라나섰다가, 초록색 때수건에 밀려나오는 각질만큼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뜨겁고 아픈 시간이 지나면 목욕탕 탈의실에서 맛볼 수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맛에 두 눈이 번쩍 뜨이곤 했습니다. 바나나 우유와 요구르트, 여러분께는 목욕탕이 어떤 맛으로 기억되시나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 맛이야!>, <목욕탕>, <Help me!> 연작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 맛이야!>, <목욕탕>, 연작

 

 

목욕탕에 얽힌 작지만 따뜻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곳, 여기는 현대갤러리입니다. 중구청 앞 문화예술의 거리를 1985년부터 지키고 있는 이 문화공간에서 대전의 젊은 작가 김민정의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김민정 작가의 개인전은 제목부터 재밌습니다. I ♡ MOKYORK (아이 러브 목욕).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문구에서 착안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나나 우유와 인스턴트 커피가 채워진 꼬마 냉장고까지,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김민정 작가와 잠깐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안녕하세요? '아이 러브 목욕'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목욕과 목욕탕을 주제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목욕을 좋아합니다(웃음). 사람들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차림과 장신구, 화장 등으로 겉모습을 포장합니다. 그러나 목욕탕에서는 다르지요. 외모를 치장했던 모든 것들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모두가 평등해지는 공간입니다.

 

주제로 삼은 두번째 이유는, 동네 목욕탕의 역할이 그리워서입니다. 단순히 깨끗이 몸을 씻는 것을 넘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가정마다 욕실이 있어 옛 이야기가 됐지요.

 

그리고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은 일요일 아침에 목욕을 하고, 꼭 짜장면을 먹으러 갔어요. 아직도 다 그려내지 못한 작품들이 있어, 목욕과 목욕탕을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Q. 작품 주인공들이 다 동물입니다. 열두 띠 동물도 있고 판다곰도 있는데, 동물을 좋아하시나요?

"예,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Q. 'Help me!'라는 작품은 네 가지 색 때타올을 배경으로 한 연작입니다. 세 가지 '세신' 시리즈가 의도한 바는 무엇인지?

 

"'Help me!' 시리즈는 때타올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라, 왼쪽과 오른쪽의 앞다리와 뒷다리의 때를 미는 장면을 네 가지로 나눠 그렸습니다.

 

세신 시리즈는 '세신 고릴라', '세신 코끼리', '세신 고양이'로 이어집니다. 목욕을 하려면 먼저 때를 잘 밀어야하니, 고릴라 같은 힘이 필요하지요. 때를 밀고 나면 코끼리 코처럼 물을 뿜어 씻어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가 안마해주듯 맛사지 받으면, 그만한 치유법이 없지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신 고릴라>, <세신 코끼리>, <세신 고양이>, <탈의실>, <토토의 첫 mokyork~ (목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신 고릴라>, <세신 코끼리>, <세신 고양이>, <탈의실>, <토토의 첫 mokyork~ (목욕)>

 

 

Q. 개는 우리에게 친숙한 반려동물이지만, 열두 띠 동물과 판다곰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열두 띠 동물들은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판다 신이 강림한 것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다들 표정이 좋지 않지요. 때를 제대로 밀려면 먼저 잘 불려야 하는 법. 거저가 있나요? 뜨거운 물 속에 들어앉아, 그 답답함을 꾹 참고 버텨야 합니다. 그래서 작품 제목은 '용암탕'입니다. 

 

이번 전시작 중에 가장 큰 작품은 '사우나 中(중)'입니다. 판다곰과 개, 닭 등 여러 동물들이 사우나실의 뜨거운 열기 속에 참고 있는 모습을 사우나 밖 창문에서 바라본 장면입니다."

 

 

위에서부터 <용암탕>, <회춘탕>, <잠수>, <사우나 中>위에서부터 <용암탕>, <회춘탕>, <잠수>, <사우나 中>

 

 

Q. 작품 설명을 보면, 순지에 분채라는 기법으로 그렸다는데 설명해 주시겠어요?

 

"순지는 닥나무 섬유로 만든 한지입니다. 보통 한지보다 배 이상의 수고로움을 거치기 때문에 결이 곱고 두꺼워서 채색화에 쓰입니다. 분채는 돌가루를 곱게 빻아 아교풀에 섞고, 여기에 다시 염료를 넣어 만든 물감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사임당의 초충도 역시 이 분채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들입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전통채색기법을 배워서 지금도 응용하고 있습니다. 전통채색기법은 서양화처럼 캔버스에 바로 그리지 않습니다. 순지에 바탕색을 먼저 칠하고, 스케치는 다른 종이에 합니다. 그리고 그 스케치 선이 순지에 스며드는 과정과 여러 작업을 거친 후에 작품이 완성됩니다. 조선시대 왕의 초상인 어진을 그리는 것과 같은 방법이지요."

 

 

 

 

Q. 몇몇 작품은 돼지를 주제로 한 연작입니다. 표현방법이 민화 같기고 한데, 특별히 이 작품들을 만든 이유가 있나요?

 

"이 작품들은 제가 돼지띠라 돼지를 좋아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 싶어서 그렸습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에게 고운 한복을 입혔지요. 작품 소재는 우리 민화와 풍속화, 어우동 이야기에서도 영감을 얻었습니다. '福(복)'이라는 작품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하는 모란꽃과 행운과 금전운을 상징하는 돼지를 함께 표현했습니다."

 

 

왼쪽 위 <장구춤>, <낮잠> 등, 오른쪽 위 <福(복)>, 오른쪽 아래 <줄타기>, <소녀>왼쪽 위 <장구춤>, <낮잠> 등, 오른쪽 위 <福(복)>, 오른쪽 아래 <줄타기>, <소녀>

 

 

11월 29일까지 이어지는 김민정 작가의 개인전은 첫술프로젝트에 힘입어 열리게 됐답니다.

 

첫술프로젝트는 대전광역시와 대전문화재단이 만 35세 이하의 청년 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대전에 뿌리를 둔 젊은 작가들을 위해, 서류작성과 실적에 대한 부담은 줄이고 창작활동과 기획프로그램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합니다. 올해 처음 시행된 첫술프로젝트에는, 엄중한 심사 끝에 최종 50여 명(팀)의 공연과 기획, 전시 등이 선정됐습니다.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배고프고 고단한 길을 걷는 것이지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처럼, 선정된 이들에게 주어진 공공지원금 역시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떠먹는 그 숟가락마저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걸고 연극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 대관부터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겠지요.

 

 

 

 

첫눈에 이어 겨울비 오던 날 찾았던 대전의 젊은 작가 김민정 개인전, <I ♡ MOKYORK>. 11월 마지막 수요일까지 계속되고요, 작가의 작품 해설을 직접 들으며 감상할 수 있습니다.

 

될 성부른 작가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응원합니다!

 

* 김민정 개인전, <I ♡ MOKYORK> *

 

1. 전시장소 : 현대갤러리

2. 전시기간 : 11. 23. ~ 11. 29.

3. 전시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4.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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