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냐는 질문에 수줍게 웃던 청년 권봉서씨.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꽤 담백한 표현으로 자신을 정의했습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프로그래머 일을 하다가 잦은 야근에 지쳐 휴식기를 가졌던 때. 그 때 딱 한 달만 놀자는 생각에 우연히 오토마타 전승일 감독의 단기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오토마타'라는 창작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첫 작품을 만들게 되며 창작의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 <운동부 남자친구의 자신감>과 함께 



그는 '오토마타 디자이너' 입니다. '오토마타'란,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장난감, 조형물 등을 의미하는데요. 간단한 구조에서부터 복잡한 형태까지. 또 다루기 쉽고 가벼운 종이 재료에서 전통적인 나무 재료, 금속 재료까지. 다양한 형태와 소재를 아우르며 연출할 수 있는 아트워크(artwork)입니다. 


정교한 기술과 시각디자인적인 예술이 융합된 복합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오토마타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영역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을 증명하듯, 오토마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들의 출신도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진 않습니다. 미술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활동하는 이도 있습니다.



▲ 첫 작품 <메롱고양이>


 

Q. 가장 처음 만든 건 어떤 작품이었나요?

권봉서 : "전승일 감독님 수업에서, 8강의를 듣는데 수업동안 3작품을 만들었어요. 여러 기계원리를 배우면서 그 기계원리를 사용한 단순한 오토마타를 만들어봤거든요. 그 감독님의 작업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거긴 지금의 메이커스페이스처럼 여러 공작기계가 있었어요. 그런 걸 다루는 걸 배웠죠. 맨 처음 만든 건, 혓바닥을 내민 고양이가 뱅글뱅글 도는 오토마타였어요. 아주 단순한 거죠. 손잡이를 돌리면 혓바닥을 내민 고양이가 뱅글뱅글 도는 그런..."



https://youtu.be/oMDDN7E6f10

▲운동부 남자친구의 자신감-권봉서



전승일 감독과의 인연은 수업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승일 감독이 제안한 수원시 공공예술프로젝트의 스텝일을 봉서씨가 맡았기 때문이죠. 당시 수원 역사를 재현하는 행사 기획 컨셉이 '오토마타' 였던지라 전승일 감독이 맡게됐는데요. 봉서씨에게도 또다른 기회가 찾아오게 된 거죠. 

 

봉서 씨는 전승일 감독과 함께 서울에서 오토마타 작업을 했던 순간들이 재미있었다며, 이 오토마타를 취미로든 직업이로든 평생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113yzmaMk48

▲ Don't stop-권봉서



*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나게 되며...


봉서씨의 직감은,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시제품제작소의 '메이커톤' 이라는 행사를 통해 좀 더 구체성을 띠게 됩니다. 메이커톤은, 메이커+마라톤의 합성어 인데요. 무박 2일동안 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팀을 짜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인거죠.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기획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였다고 합니다. 


권봉서 : "저희팀이 만들었던 건 안전가로등 같은 거였어요. 요즘에 여성분들 밤에 위험하지 않습니까? 가로등에 스위치가 있어서 그걸 누르면 경찰에 신고 되는 그런 시스템은 있죠. 그런데 만약에 그 스위치가 손에 닿기도 전에 피해가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면 신고 되는 그런 서비스를 만든 겁니다. 아주 단순한 버전을 만든 거죠."


"그런데 그걸 만들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그 때 이 공간을 처음 알았어요. 이런 공간이 있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고, 레이저 커터기나 각종 공구가 있다는 거. 그리고 이걸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더군요."


"내가 언제 작업실을 가질 수 있을까. 마흔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이 지금 당장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오토마타 디자이너 권봉서


그렇게 오토마타를 만들다가 여기저기서 오토마타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오면서 강의도 시작하게 된 봉서씨. 강의수입이 생기면서 느꼈다는군요. '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오토마타가 직업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권봉서 : "수업을 하게 되면서 수업자료가 필요하게 되는데, 저는 그걸 키트로 만들었어요. 나무로 조립을 하면 오토마타가 되도록... 학생들은 제가 가져간 키트를 조립해서 만들게 되는 거죠. 작품 상단의 이미지는 자유롭게 폼보드 같은 걸로 잘라서 만들 수 있게 하구요. 매커니즘 박스는 손잡이 돌리면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똑같이 만들어 지는 거죠."


봉서씨는 메이커스페이스에서의 작업을 공유함으로써 강의 제안도 받고, 수업자료로 키트를 제작하게 되는 성과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는 메이커스페이스라는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의 힘'도 언급했습니다.


권봉서 : "오래도록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아이들 상대로 강의를 해왔던 분을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았어요. 강의를 저보다 일찍부터 많이 해온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웠죠."


"그게 저는 참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메이커스페이스라는 공간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모여서 얘기를 하다 보니 시너지효과가 나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비즈니스로 발전시킬지, 키트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하다 못해 강의료 협상을 어떻게 하는지... 사소한 것들도 물어봐서 배울 수 있는 것이죠. 모두 메이커스페이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https://youtu.be/CDsfw50D53w

▲ 밤손님-권봉서



* 관객이 손잡이를 돌릴 때...


그는 오토마타가 가진 예술성으로 어떤 소통을 꿈꿀까요? 오토마타의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권봉서 : "오토마타 작품을 가지고 갤러리에 전시를 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길 꿈꾸죠. 그런데 예술작품은 사람들이 봐서 즐거워야 할 거 아니에요.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 미적 쾌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오토마타는 회화나 조각작품과는 달리, 관객이 손잡이를 돌릴 때 전시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처음 볼 때와 돌렸을 때의 이야기가 다른 작품인거죠. 그러니까 아주 짧은 영상인데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영상. 짧은 이야기지만, 오토마타 작품도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오토마타를 잘 만들어서 누군가를 울릴 수 있게 되는 상상을 해본다는 봉서씨. 오토마타라는 예술형식의 끝을 보고 싶다는 예술가의 의지에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https://youtu.be/AbZIas3Arzk

▲ 메이커 운동회를 위해 만든 작품 '윌리긱 오토마타'-권봉서


* 메이커 문화의 확산을 꿈꾼다


메이킹을 하게 되면서 길을 걷는 것도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는 봉서씨. 그의 말대로라면, 일상적으로 걷는 보통의 거리에서도 품을 수 있는 상상력은 누구에게나 허용됩니다. 


권봉서 : "예를 들어 징검다리를 건널 때도, 그냥 징검다리가 아니라 용암이 흐르는 곳인데 뒤에서 괴물이 따라온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 그게 상상력 아닙니까. 저는 그게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봤습니다. 주부, 중년남성, 예술가, 아이... 그들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창작을 했어요. 그건 제가 좋은 강사여서가 아니라 창작의 기쁨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메이커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고 느끼거든요."


두근거렸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창작의 본능을 서슴없이 말하는 청년예술가의 확신. 그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번졌습니다. 


권봉서 : "메이킹을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거죠. 메이킹을 한다는 것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굳이 돈 주고 사지 않는다는 거에요. 스스로 개조하거나 만들어서 내 삶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것이거든요. 내 삶의 문제를 직접 손을 넣어서 개입하겠다는 겁니다."


"개입을 해서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죠. 성공으로 인한 성취감은 삶에 대한 어떤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고... 사실 메이킹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품이나 어떤 서비스를 볼 때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을 보통은 아예 못하거든요."


"내가 생산자가 될 수 있구나. 내가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 이런 가능성을 가슴에 품게 되는 겁니다."


 

창작을 하게 되면 삶에서 얻는 즐거움의 농도가 다르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늦은 오후의 지루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일상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흥미진진한 오토마타 디자이너 권봉서씨. 그가 만들어 가는 문화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시간들이 지금도 잡힐 듯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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